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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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학교 | 김국진 목사 (교목)

 

 

 

산돌학교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중고통합 5년제 기숙형 대안학교입니다. 감리교 종립학교로써 신앙과 지성을 겸비한 성숙한 인격을 꿈꾸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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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염이 퍽 많이 나는 편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열심히 면도를 해도 저녁이면 거뭇해집니다. 해가 기울면 사람들이 저를 게으른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는지, 그런 혐의에 대한 혐의가 땅거미처럼 일어섭니다. 산돌학교에서는 저녁에 설교를 하는 일이 없어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는 가혹한 일이 멎었습니다. 방학이 되니 면도를 할 일이 적습니다. 수염이 적잖이 길었을 때 갑작스레 수동을 찾아온 지인을 만나 밥을 먹었습니다. 지인이 긴 수염을 타박합니다. 건조한 어조로 “수염이 길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 수염이 아니라 저를 나무라는 말입니다. 억울했습니다. 차라리 수염에 물이라도 주면서 정성을 쏟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저는 수염을 기른 적이 없습니다. 수염은 절로 자라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수염을 적극적으로 경작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수염을 깎는다는 격한 능동에 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가 야심차게 무언가를 한 사람으로 여겨진 아이러니가 재미있습니다. 

수동의 삶은 저절로 자라나는 것 같은 신비와 선생이라는, 먼저 태어났다는 책임감의 긴장 위에 놓였습니다. 수염을 기르는 것과는 다른, 적극적인 수동이 필요한 것 같다가도 꼭 필요한 어떤 능동은 잘 모르거나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나 죄책이 달처럼 뜨고 지기를 거듭합니다. 돌아보면 늘 부족해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혹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종점이 있는 고민이기를 바라지만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선생이라고도 표현하셨던 예수님을 떠올리면 종점은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하는 기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학교에 차흥도 목사님이 학교에 오셨다기에 사무실에 내려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농사가 재미있냐고 물으시는데 머뭇거리다가 아직 농사를 잘 몰라서 조심스럽고 책임감이 앞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가르치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학생들도 재미있게 한다고 주신 말씀이 기억이라는 채로 거른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긴장 위에 놓인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것에 압도되어 그 길에 선물처럼 피어있는 보람과 재미를 놓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방학중입니다. 우리 애가 뒹굴뒹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간혹 듣습니다. 분명 뒹굴뒹굴했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아이러니가 재미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신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자신을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적극 추천합니다. 부모, 학생, 선생, 우리 모두, 누군가가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삶들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칭찬하고 응원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생존, 재산, 명예, 체면, 건강, 사랑, 구원, 지구의 평화 그 어떤 것이 꼭짓점이 된 긴장 위에서 뒹굴뒹굴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재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학생들도 어떤 긴장들 위에서 수염처럼 자라나고 있겠습니다. 새로운 꼭짓점을 세우려면 다른 꼭짓점들에서 뒹굴뒹굴 멀어지는 거리두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 02 산돌학교 김국진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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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훈 2021.03.07 15:42
    산돌학교 학부모로서 김국진 교목 선생님의 글에 공감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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