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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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쇠락,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회자되어 왔던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1980년대까지 급속하게 성장세를 지속해왔던 한국 교회는 1990년대에 그 정점을 찍은 후, 그 성장세가 멈췄고 이어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부흥과 성장의 아이콘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한국 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인구 증가 추세의 둔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와 배경을 분석하며 다양한 대책들을 세워보지만, 별 효력이 없어 보인다. 이는 7~80년대를 풍미했던 부흥과 성장 논리만을 고집하며 본질적인 이유를 외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교회 현실에 대하여 객관적인 접근을 통해서 공공신학에 기반한 교회의 공신력 회복을 주장하는 학자(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 대학)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쇠락 이유를 사회적 공신력의 하락으로 본다. 다종교 사회에서 선교는 그 종교(교회)에 대한 호감도가 결정적인 동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그 신뢰도, 즉 공신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뢰도의 하락은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더 가속화된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호감이 없는 데, 누가, 복음에 귀를 기울이며 교회를 오겠느냐는 뜻이다.  

 

그러한 호감도와 신뢰도 회복은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공동체에 대한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 안에서 교회를 지역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인식하면서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기독교사상 744호, 29) 결국, 이 말은 교회는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그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다져진 교인들이 지역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내면서 신뢰를 쌓으며 선한 영향력(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교회는 지역민 모두에게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사는 “우리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친환경 유기농 농업을 정착시킨 외암리 “우리 교회” 송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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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송악교회(이종명 목사, 온양동지방)가 바로 그런 교회이다. 광덕산(700m)과 봉수산(532m), 그리고 되박산(250m)과 황산(250m) 사이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가둔 송악 저수지와 그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짓는 평촌리, 역촌리 일대 농지는 청정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일반 관행농으로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이곳이 지금은 충남 지역에서 대표적인 친환경 유기농업 단지로 자리 잡은 것은 송악 교회의 역할이 그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다는 이는 없다.

 

그래서인가 송악교회는 유난히 생명 일꾼들이 많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한살림 생산자 연합회” 송악면 대표이며 “송악골영농조합” 대표를 맡고 계신 이헌범 장로, 그리고 앞서 취재(81호, 2014년 5월)했던 안복규 권사(겨레벌꿀영농조합 대표, 다라미영농조합 총무)와 108호(2018년 11월호)에 실린 박사라 권사, 김태형 성도(협동조합 고랑이랑 대표)가 바로 대표적인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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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교회는 한국 전쟁 중이었던 1951년 11월, 송악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한 교회다. 7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송악교회는 1980년 엄혹한 시절부터 남다른 행보가 눈에 띈다. 바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를 지낸 김영주 목사께서 1980년, 12대 담임자로 부임한 후부터다. 김 목사께서는 부임하면서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지역에서 지역 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냈다. 이후 1994년 11월, 14대 담임자로 부임한 이종명 목사(60)가 부임하면서 사회복지관 건립(1997)과 농민선교특별위원회 조직(2000) 등 지역을 섬기며 생명을 살리는 본격적인 활동들이 시작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친환경 유기농업 단지의 초석을 다졌다. 그렇게 유기농업단체 조성을 위한 송악교회의 역할은 생명을 살리는 목회에 대한 분명한 목회 철학과 유기농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일들이었다. 유기농업단지 조성을 위한 교회와 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성과들은 향후 추가 취재를 통해 덧붙이기로 한다.

 

지난 11월 24일, 그런 내로라하는 친환경 농업 일꾼들과 함께 송악교회를 섬기며 소박한 친환경 유기농 농사로 생명을 살리는 일꾼 김갑순 권사(72)와 김동하 권사(80) 내외를 찾았다. 

 

회쟁이 마을 유일한 친환경 유기농업인 김갑순 권사

 

사실, 김 권사는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은 아니다. 경북 경주가 고향인 김 권사께서는 건축일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 후 서울(약수동)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에 살고 계셨던 시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1970년경, 송악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농사일을 하게 된 셈이다. 김 권사께서 송악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이다. 시어머니였던 고 김희남 권사(1976년 작고)께서는 송악교회 창립 교인으로 그의 영향으로 김 권사께서 송악교회를 섬기는 교인이 된 셈이다. 남편은 건축 사업을 정리하고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나가게 되었고 김 권사께서는 현재 사는 곳에서 홀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가 1985년 경이니 농사 이력은 45년여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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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순 권사                            김갑순 권사와 김동하 권사( 올 초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

 

 

호주로 이민을 떠난 지인의 땅을 임대하여 시작한 소작농사(논 10마지기, 밭 300평)는 소박하다. 그러나 여성인 김 권사 혼자의 힘으로 짓기엔 힘에 부치는 규모이기도 하다. 주중에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의 도움이 있었지만 사실상 김갑순 권사 혼자서 감당한 농사였다. 그렇게 시작한 농사는 그냥저냥 남들이 하는 대로 그렇게 감당하던 중, 뜻밖의 일을 당하게 되었다. 바로 농약에 중독된 것이다. 

 

고추와 참깨 밭에 농약을 살포하고 나서 갑자기 기운이 떨어졌고 이내 쓰러져 잠이 든 것이다. 그때 유치원생이었던 막내딸이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 살아난 이야기는 김 권사께서 친환경 농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이후에 농사일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한 경험은 훗날 이종명 목사의 부임과 함께 시작된 영농조합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친환경 농업의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김 권사는 그 일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친환경 유기농 농사는 자신의 힘으로 결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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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 농사는 쉽지 않았다. 담임목사의 설득과 함께 하는 교우들이 힘은 되었지만 막상 닥쳐온 일들은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수십 년 관행 농업을 통해 화학비료와 농약에 길든 흙의 기운을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년 동안 땅을 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유기 농사를 시작한 첫해 농사에 대한 고달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들 벼보다 그 키가 현저하게 작을 뿐 아니라 각종 병충해로 벌겋게 죽어가는 논을 본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오죽하면 “그때 흘린 눈물로 송악 저수지를 채웠다”(안복규 권사)라는 말이 나왔을까?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저수지 둑에 올라 담임 목사와 함께 울었다는 일화는 참으로 애잔하다. 김 권사가 거주하는 회쟁이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다 안다. 그래선가 아직도 이웃들은 선뜻 친환경 농사를 꺼린다. 그래서 회쟁이 마을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이는 김 권사가 유일하다. 힘은 들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낸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수박을 논에 뿌리며

 

사실, 김 권사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일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일손을 놓을 수 없다. 1995년부터 시작하여 이제 자리를 잡은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과 애착은 함께 사는 남편으로부터 핀잔과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김 권사의 의지와 헌신적인 자세에 남편도 어느새 동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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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권사가 거주하는 회쟁이 마을

 

어느 날 남편이 수박을 사다가 논에 뿌렸다는 일화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렁이 농법으로 논풀을 다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손으로 제거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일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너무 힘들다는 뜻이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앉을 수가 없어 기어 다니며 논풀을 제거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다못해 남편이 수박을 사다가 썰어서 논에 뿌린 것이다. 우렁이가 가지 않는 곳에 우렁이를 유인하여 논풀을 잡기 위한 아이디어였던 셈이다. 그 방식은 바로 통했고 효과를 봤다고 했다. 친환경 유기농업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이건 농사가 아니라 신앙고백이요, 인문학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오늘날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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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문삼석 시인의 “그냥”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엄만 내가 왜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 그냥...”

 

엄마가 제 새끼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을까? 새끼가 제 엄마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을까? 그 까닭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구차할까 싶다. 그래서 “그냥”이 정답일 터이다.

 

김 권사가 노구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어렵다는 친환경 유기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뭘까, 궁금하다. 농약 중독 경험, 담임 목사의 설득, 생명을 살리는 심오한 신앙고백, 호구지책, 그것으로 논바닥을 기어 다니며 논풀을 잡아 뜯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이 정답 아닐까 싶다. 그것을 김 권사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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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안 2021.01.04 09:25
    2021년도에는 더욱 성장하는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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