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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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바닷가 산책을 나섭니다. 


옹기종기 납작납작 이마를 맞대고 누운 지붕들이 정겹습니다. 올망졸망 이어진 검은 현무암 밭 담을 지나면 모래 해변을 만납니다. 남들은 비행기 타고 와서 걷는 해안 올레길을 기지개 켜며 걷는 복을 매일 아침 누리고 삽니다.

날마다 걷는 해변이지만, 아침마다 만나는 바닷가 풍경은 같지 않습니다. 해 돋는 시간, 하늘에 드리운 구름 그리고 바람결에 따라 바다색도 질감도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사진2구름과 바다.jpg 사진3황금바다.jpg


맨발로 백사장을 걷는 발바닥의 촉감도 날마다 다르지요. 완전히 물이 빠진 간조 시간의 해변은 트랙터로 갈아엎어 놓은 듯, 모래 이랑이 깊어 발바닥운동이 절로 됩니다. 파도가 센 날에는 파래가 하염없이 밀려들어 연두색 카펫 해변 위를 미끌미끌 걷기도 하고, 질퍽하니 해초 범벅이 된 해변에서 아이들처럼 철퍼덕거려 보기도 합니다. 


사진4모래이랑.jpg  사진5파래카펫.jpg

사진6 해초범벅길.jpg


아침 고즈넉한 해변을 걸으며 얻는 특별한 기쁨은 파도가 만들어 놓은 흔적들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물새와 깅이(게의 제주어) 발자국, 작은 조개껍데기와 떠밀려온 미역 줄기와 해초들, 파도에 닳고 닳은 유리병조각과 나무토막이 물결과 어우러져 남긴 흔적은 마치 커다란 추상화폭 같습니다. 


사진7게와 새의 꼴라보.jpg

사진8조개껍질 추상.jpg  사진9물결추상.jpg


바닷물이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으시고, 도도한 물결을 멈추라 명하시며, 날마다 걸작품을 안겨 주시는 창조의 명공, 하나님께 절로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 날 아침도 모래사장 추상화를 감상하며 찰싹거리는 해변 끝자락을 걷다가 낯선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저게 뭐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라!~” 메뚜기 한 마리였습니다. 해변 풀숲이라면 흔히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곤충이지만, 찰싹거리는 파도 앞에서 바다를 향해 꼼작도 않고 있는 녀석을 보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10모래사장에 메뚜기.jpg  사진11바다와 메뚜기.jpg


‘아니, 저 녀석 도대체 여길 어떻게 온 거야?

밤새 드넓은 사막 같은 백사장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기어 왔단 말이야?

아니, 이제 햇볕이 쨍쨍 내리쬘 텐데.... 시원한 풀숲 그늘을 두고 해변 끝까지 어쩌려고 온 거야?’ 


모래 해변 끝에서 메뚜기와 낯선 만남을 한 저는 염려와 호기심으로 그 연두색 작디작은 녀석을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인기척을 내며 사진을 찍어도 미동도 않습니다. 

그 아침 바다와 혼연일체가 된 듯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메뚜기에게서는 거룩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조나단 시걸 같은 메뚜기일까?’ 


푸른 바다 앞에 압도되어 있는 메뚜기를 한참을 응시하다가 출근 준비로 제가 먼저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내 눈과 내 느낌이 아니라, 메뚜기 눈과 더듬이로 느껴지는 저 바다는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메뚜기를 바라보는 내 눈이 지극히 제 경험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 아이들에게 그 메뚜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저마다 ‘바다와 메뚜기’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우리 동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메뚜기가 할 말을 잃고 “얼음!”이 되었다고 하고, 파도 소리가 무서워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겁쟁이 메뚜기라고도, 엄마가 찾고 있을 텐데, 집으로 가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도 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그 이야기 끝에 이구동성으로 “우리도 메뚜기가 얼음이 된 그 바다에 가서 놀고 싶어요.”라며 아우성을 칩니다.


#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 할수록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휴대폰과 인터넷에 넋이 빠진 아이들일지라도 여름 바닷가에서 텀벙거리며 노는 것을 마다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 마을에 사는 우리 센터 아이들 생활은 바다와 거리가 멉니다. 학교와 아동센터의 프로그램이 교실환경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아이들끼리 보말 잡고, 깅이(게) 잡으러 다니던 시절은 옛날이 되었습니다. 학교와 센터, 그리고 집을 센터차로 왔다 갔다 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일주일 내내 바당(바다의 제주어)에 한 번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당근밭이 지천인 마을에 살아도 당근 잎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주 고동하면 떠오르는 보말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 바다 앞에서 경건하리만치 집중하고 있던 메뚜기 덕분에 센터의 일과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능한 자연에서 놀며 관찰할 거리를 찾아주자던 초심을 떠올렸지요. 아이들을 바당에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들은 메뚜기처럼 꼼짝 않고 바다를 바라보진 않아도, 호기심에 눈빛들을 반짝이며 생기가 도는 얼굴로 갯바위에서 게를 잡고 조간대* 조수웅덩이에서 열심히 이름 모를 고동들과 생물들을 건져 올립니다. 

* 조간대  : 만조 때의 해안선과 간조 때의 해안선 사이의 부분을 말하며, 육지와 바다에 있어서 인간의 피부에 해당하는 민감한 곳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간척이나 파괴를 한다면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조류, 패류, 갑각류, 고둥류, 연체류, 식물, 조류 등 여러 생물이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간대 [intertidal zone, 潮間帶] (두산백과)


사진12조수웅덩이와 아이들pg.jpg

사진13웅덩이 탐색jpg.jpg  사진14조개껍질 자세히 보기 .jpg


고동에도 문두드리, 메옹이, 보말......생김새 따라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음을 가르쳐 주었지만, 선생님 밑천도 짧아 안타까웠지요.


개구쟁이 일학년 친구가 파도에 밀려온 나뭇가지로 모래사장에 일필휘지로 글씨를 씁니다. 


“바다 좋아” 


글씨만으로 부족했던지 하트(♡) 하나 더 그려놓고는 만족한 얼굴로 만세를 부릅니다.


사진15바다좋아.jpg


“바다! 정말 좋지!!! 친구야. 사랑하는 바다에 더 자주 와 보고 더 많이 사랑해주자꾸나!” 


# 우리 동네 별방진에서 ‘밤바다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올해 제3회를 맞은 밤바다영화제는 바다환경에 관한 영화를 소개하며 자연과 지구, 인간이 만든 재해로 변해버린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그럼에도 밤바다의 낭만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열리는 하도리의 축제입니다.

올해 개막작으로는 ‘조수웅덩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하도리를 비롯한 제주 동쪽 바다의 조간대 갯바위 웅덩이, 우리 발아래 생물들을 2년여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영화였습니다. 영화에 출연한 웅덩이의 생물 이름이 자그마치 90여 종이 넘었습니다. 건강하게 자연을 보전하려면 생물 종(種) 다양성이 담보되어야 하지요. 우리 바당의 시작인 조수웅덩이에 그렇게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서귀포 앞바다가 해양 쓰레기로 물풀 하나 발견할 수 없는 회색 바당이 되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터라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조수웅덩이’를 제작한 임형묵 감독과의 대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어린이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그 많은 물속 생물 이름을 알게 되셨나요?” 

“매일 만나 노는 친구 이름은 알게 되지 않나요? 관심을 가지고 자주 보게 되면 이름이 궁금해지고 궁금하면 어떻게든 찾아보게 되지요.^^” 


우리 바당을 지키는 길은 바다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보다, 바당에서 사는 작은 생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그 생물의 입장에서 바당을 바라보는 것이라 덧붙이며 임감독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바다 생물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드는 감독과 늦은 밤까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다 생물에 대해 질문을 하는 동네 어린이를 보니 조수웅덩이에 백 가지에 가까운 생물들이 오글오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 가슴에 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미래세대의 자연을 빌려 쓰고 있는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는 소금 같은 존재가 바로 내가 속한 지역사회에 가까이 있음을 발견한 밤. 저 멀리 밤바다 등대 불빛이 한층 밝게 깜박이며 다가왔습니다.     


사진16밤바다영화제.jpg  사진17조수웅덩이 바다의 시작.jpg


#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십 여일 짧은 여름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방학이라 해도 방과 후 수업에, 코로나19 2단계 방역대책으로 나들이 나서기도 어려운 때가 되었습니다. 

바닷가 웅덩이에서 모두 함께 텀벙거리며 놀진 못하더라도, 영상을 통해서나마 아이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사는 생물들의 이름을 입술에 익히고 눈에 담아 두는 시간을 가져 보렵니다. 

조수웅덩이에서 바당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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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원 2020.09.02 15:15
    와~~~ 제주 자체도 멋지지만 아이들도 행복한 삶을 보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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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선물 2020.09.05 10:04
    매일 똑같은 바다라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선 매일매일 선물 처럼 다르게 만드셔서 바다의 필요를 채우시고 저희에게 기쁨을 주시네요ㅠㅠ 자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관찰하니 이리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만나시고 기사로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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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밀알 2020.09.06 19:50
    아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바닷가에 그리고 보고싶은 유목사님도 보고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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