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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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제목처럼 ‘동백꽃 필 무렵’입니다. 

검은 돌담을 배경 삼아 짙푸른 동백 잎 사이로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 빨간 동백꽃! 온통 주황빛으로 물든 감귤을 수확할 때임을 알려 줍니다. 


제주의 귤 수확은 10월 말께부터 극조생 감귤을 타는(제주에선 귤을 따는 것을 ‘탄다’라고 합니다) 것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제주 노지감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생종 감귤을 수확하는 시기는 바로 동백꽃 필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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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감귤 밭인 우리 동네 올레길의 동백나무들도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동백나무 숲을 찾는 인파가 샛노란 꽃술에 붉디붉은 동백꽃이 단아하게 핀 꽃길에 탄성을 올리고 있답니다. 

헌데 우리 동네 삼촌들은 피고 지는 동백꽃에 눈길조차 줄 틈이 없습니다. 한 해 내내 농사지은 귤을 눈 내리기 전에 다 타야 할 추수철인 까닭이지요. 그야말로 부지깽이도 춤추는 타작마당과 같습니다. 대략  한 달 남짓한 기간 안에 조생 귤을 다 거두어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도 기후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점점 겨울철 기온이 높아져 돌 창고에 귤을 오래 저장해 두고 출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앞집 삼촌네는 작년에 구정 대목을 내다보고 창고에 귤을 저장해 두었는데, 따뜻한 겨울 날씨에 문적문적 다 썩어 내려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하여, 올해엔 일찌감치 밭떼기로 귤을 판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부터 온 식구가 총출동해서 귤 따랴, 귤값을 두고 밭떼기 상인과 눈치 싸움하랴 바짝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제주도에서 수확된 귤은 크게는 네 가지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건너간다고 합니다. 농협에 의한 수탁 또는 매입 유통, 영농법인이나 중간 상인들에 의한 매입 유통, 작목반을 통한 직접 유통, 농민과 소비자의 직거래 등입니다. 

우리 앞집 삼촌네는 상인에게 넘깁니다. 그런데 상인이 밭떼기 계약 후에도 “맛이 시다. 때깔이 안 좋다. 귤이 너무 크네, 너무 작네” 트집을 잡으면서 계약 가격보다 후려치니 일 년간 땀 흘린 보람을 맛보기는커녕, ‘죽 쒀서 개 주는 것’ 같다며 씁쓸해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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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빌레 삼촌네는 오래된 작목반 회원 농가입니다. 앞집 삼촌네보다는 안정적인 거래처와 비교적 좋은 귤값을 확보하고 있는 편이지요. 그런데도 올해는 아주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더라고요. 그 동안은 이 삼촌이 속한 작목반이 육지의 한 소도시에 귤을 독점적으로 공급해 왔답니다. 매년 10킬로 포장으로 15만 상자의 물량을 공급했는데, 올해는 거래처에서 갑자기 대다수 물량을 5킬로 포장으로 해달라고 주문을 하더랍니다. 가구원 수가 줄어든 도시 소비자의 선호로 인해 포장 단위가 줄어든 것은 이해한다고 칩시다. 그러나 선과장 생산라인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을 갑자기 2배로 늘릴 수가 없는 거지요. 5킬로 박스든, 10킬로 박스든 포장과정은 비슷하니까요.  

쉽게 말해서 작목반 선과장은 수확해 놓은 감귤의 절반 밖에는 선별하고 포장할 수  없으니, 5킬로 박스로 포장하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감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말 난감한 사태에 부딪친 거죠. 작목반 반장인 동네 삼촌은 이제 노지감귤 재배면적을 확 줄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농가가 감귤을 시장에 내다 파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을’일 수 밖에 없는지,” “유통과정에서 농민들은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 건지” 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뒷빌레 삼촌은 평생 부부가 귤 밭을 일구어서 4천 평에 가까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들은 농협에 전량을 판매하고 싶어 하지만 농협이 수매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전체 감귤 생산량의 20~30% 정도만이 농협이나 감귤농협이 운영하는 공영 선과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농가는 젊은 아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직거래 판매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수매가마저도 예년의 절반에 가깝게 떨어졌답니다.  지난 여름 빈번한 태풍에 감귤의 당도도 떨어지고, 생채기가 많이 나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올해 이 삼촌네는 직거래 판매에 목을 매야 하는 실정입니다. 직거래의 생명은 나뭇가지에서 딴 귤을 바로바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신선함이지요. 싱싱한 귤을 소비자에게 택배로 보내기 위해 주문량에 따라 조금씩 수확하는 정성을 기울이다 보니, 채 수확하지 못한 밭에 갑자기 한파가 닥칠까 봐 여간 걱정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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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가지가 휘도록 많은 감귤이 달린 풍성한 계절에 수확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을 보면서, 선연한 붉은 빛 그대로 뚝뚝 떨어져 있는 동백꽃송이를 볼 때만큼이나 안타깝습니다.


드라마 속의 동백이가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모저모로 마음을 모아준 옹산의 아지매들을 떠올려 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희망의 동백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올 연말.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삼촌들의 싱싱한 감귤을 담은 택배 상자에 담아 보내려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삼촌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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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은 목사는 농촌선교훈련원 소속목사이자 자연환경해설사와 한라수목원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제주에서 온 편지’는 유지은 목사의 제주살이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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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의딸 2020.01.04 10:33
    글을 읽다보니 아름다운 동백과 주황빛 귤밭이 가득한 제주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고향이 시골이다 보니 몇일전 비슷한 일로 고민하시던 부모님이 떠오르네요. 정직하고 공정한 판로를 찾는게 쉽지 않네요ㅠ 농업인과 어업인들, 생산자들이 제대로 보답받을 수 있는 유통 구조가 되는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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