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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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흑(黑)을 검을 현(玄)으로  


하태혁 목사 |  단해교회


검을 현(玄)과 검을 흑(黑)은 둘 다 검은 색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과 흑은 전혀 다르다. 흑(黑)은 글자 모양이 아궁이 아래 불이 타는 모습이다. 다 타고 남은 그 재의 검은 색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현(玄)은 활시위를 형상화한 글자로 본다. 활시위에 옻이나 송진을 발라 검은색을 띄게 된 탓에 현(玄)이 검다는 뜻이 되었다. 혹은 누에고치를 상형했다고 보기도 한다. 누에고치 속 어둠에서 검다는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어둠이 바로 현의 검은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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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천지현황으로 시작하는 천자문은 하늘 빛을 현玄으로 본다. 밤하늘의 그 어둠이 바로 누에고치 속 어둠이라는 의미다. 새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게 할 태중의 어둠이다. 누에고치 속 어둠을 현의 검은 빛으로 볼 때, 어머니 자慈, 사랑 자慈도 그 의미가 깊어진다. 누에고치 두 개를 받들고 있는 마음心의 모습이 자慈이다. 새로운 생명을 품어 키워내는 어둠, 그것은 어미 태중의 어두움이다. 현의 어두움을 받는 마음, 생명을 길러내는 어둠을 겹겹이 짊어진 마음, 그것이 바로 자비이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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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흑(黑)이 다 타버린 재의 허무한 검정이라면, 현(玄)은 활시위의 검정이자 누에고치 속 검정이다. 화살을 힘차게 날릴 수 있는 기운을 머금은 검정이자 새 생명을 품어 기르는 어둠이다. 나쁘고 사악하다는 의미도 지닌 흑(黑)은 그러므로 현(玄)과 의미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현(玄)은 현묘지도라는 말도 있듯이 깊고 오묘한 신비를 머금은 검정빛이다. 새벽 미명, 빛이 밝아오기 전에 어두움을 현이라 한다. 어머니 배 속에서 마주하는 어둠도 또한 현이다. 아직 무슨 소리인지, 어떤 빛깔인지 알 수 없는 그 어둠을 배 속에서 만날 것이다. 현(玄)은 그 모든 신비를 함께 머금고 있는 검은 깊이이다. 밤하늘 별빛이 빛나는 어둠은 흑(黑)이 아니다.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이 별을 만나 부딪히면 드디어 빛나지 않던가. 별빛은 어둠속에 이미 빛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밤하늘 그 어둠은 빛과 어둠을 함께 머금은 현(玄)이다.

하루가 밝아오기 전 의식이 먼저 돌아온다. 희미한 어둠을 바라보며, 마음이 너무 무거운 날이 있다. 이제 곧 밝아올 하루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새벽일 때가 왜 없겠는가. 분명 하루가 밝아오겠지만, 낮이 낮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낮도 그저 흑(黑) 빛 가득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를 더욱 의지한다. 그 기도는 간구이기 이전에 호흡이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인공호흡이다. 출근길은 우리 집 허스키견 하니와 함께 한다.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에 겨운 녀석의 생기가 목줄을 통해 팽팽하게 전해온다. 기쁨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몸짓이 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이끌어 주는 듯하다. 카페에 나와 오픈 준비를 다 마치면, 원두를 갈아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부서져 나오는 원두 가루로 맛보는 향은 그 어떤 커피보다 맛이 좋다. 마음이 그 향을 들이키며 깨어난 다. 그 한 잔을 마시며 주님과 대화를 나눈다.

인공호흡 같은 기도, 한 생명과의 산책, 커피 향과 함께 하는 주님과의 대화… 이 모든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예배이자 기도이다. 흑(黑)만 보이던 마음의 착각이 가라앉고 드디어 현(玄)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착어린 사랑을 무애무증(無愛無憎)의 사랑으로 향하게 하는 시작이다. 그것 아니면 안 된다고 불안해하던 사랑을 자유케 한다. 사랑도 미움도 내려놓는 사랑으로 향하게 한다.

사랑 애(愛)는 아래 사진의 서각 작품(운학 박경동 작가의 서각/ 무애무증)처럼 사람이 두 팔로 마음 심心을 품어 안은 모습이다. 애愛자만 확대해 놓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 보일 것이다. 두 손으로

가슴에 마음을 안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 모습에서 수줍은 듯, 설레는 듯 벅차하는 한 영혼이 보이지 않는가.

가슴에 끌어안은 마음이 때로는 너무 큰 힘이 되지만, 때로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그 마음을 누군가를 향해 건네준다면, 그 누군가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꽉 붙잡고 자신만 소유하려는 집착의 손길로 가득하면, 이보다 더 큰 고통도 없다. 마음은 무게가 없어 너무나 가볍게 보인다. 그러나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굵은 소나무 가지 부러트리듯, 놓지 못한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영혼이 부러진다.

무애무증(無愛無憎) 가능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무애무증이 성숙하고 깊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 없고 증오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무감각, 무정함이리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미워하는 마음 그대로를 흐르도록 놓아주는 깊이가 아닐까. 사랑하지만 놓아주고 밉지만 받아주는 품이 아닐까. 가능해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무애무증을 향한다. 꽃이 피어 결국 지고 열매를 남기듯이 무애무증을 향한다. 사랑은 무애무증을 향한 부르심이다.

흑(黑)을 현(玄)으로 밝히 보는 눈뜸이 필요하다. 두려워 집착하던 사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흐르게 하는 기도가, 예배가 필요하다. 마음이 힘을 잃고 지칠수록, 사랑의 크기만큼 그 뒷면에 미움이 커져갈수록 필요하다. 흑을 없애 달라고, 적을 무찔러 달라고 더욱 매달리기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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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 박경동 작가의 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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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수 2019.11.03 10:46
    감사합니다 시골에 있는 교회 입니다 어찌참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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