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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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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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흥도 목사 | 농촌선교훈련원장

 



 

왜 남만 보느냐, 너 자신을 봐야지

수없이 듣는 이야기이고 때론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도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하시며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하셨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자기는 무엇인가?

 

지난 호에도 이야기했지만 자신을 보라했을 때는 자신의 성격에서 나오는 습관적 행위나 패턴을 보라는 이야기다. 상대의 언행을 문제시하여 그것만 보면서 옳다 그르다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언행을 살피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성격의 습관적 패턴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지금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기고 있는 정서와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욕구를 보지 못하면 그 후에 일어나는 것을 본다는 것은 緣木求魚일 뿐이다.

 

모든 욕구는 가치중립적이다.

즉 욕구 그 자체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다만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행위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새벽이슬이 풀들 에게는 다시없는 선한 양식이 되고 독사들에게는 악한 양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욕구는 채워지면 사라진다.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물을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채워져도 더 채우려 하는 욕구가 있다.

이것은 욕구라 하지 않고 욕망이라 한다.

흔히들 욕망은 악한 것이라 하지만 욕망이라는 것도 가치 중립적이다.

다만 그 욕망을 채우는 행위들의 대부분이 문제가 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욕구를 보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그 욕구를 드러내면 안 되는 것으로 그래서 욕구를 숨기는 것을 배우곤 했다.

왜냐하면 욕구를 채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이루려고 살아가지만 실제론 그 욕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

 

지금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욕구와 느낌인데 그중에 우리가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느낌인데 왜냐하면 욕구의 충족여부에 따라서 달라지는 느낌은 그 순간에 바로 오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이 왔을 때 사람들은 습관적인 반응과 패턴을 쓰게 되는데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에너지 중에 선택하여 그것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에너지가 무엇이며,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알고 봐야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습관적 반응과 패턴을 보게 된다.

이때 자신을 본다는 것은 습관적 반응과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나의 겉모습일 뿐이다.

즉 내가 즐겨 입는 외투일 뿐 내 몸은 아닌 것이다.

 

외투를 벗어야 한다.

그래서 본래적인 내 모습을 찾아야 한다.

본래적인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습관적 반응을 내려 놓아야 한다.

자신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느낌과 욕구 그리고 사용 되는 에너지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집착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집착이라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채우면 행복해진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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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규 2019.09.02 23:56
    잘 읽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내용 마치 저에게 한
    말씀 같아 느낌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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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흥도 2019.09.05 13:3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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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미 2019.09.06 08:23
    공감합니다 자기가 쓰는 에너지가 무엇인가 알아채도록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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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배 2019.09.07 22:38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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